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풍함 사건 (문단 편집) === 상하이로 퇴각 === >"모두가 우리에게 맞서는 것 같았다." >---- >쑨원의 회고. 쑨원은 북벌군이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자 백아담에서 광주 영사단을 통해 천중밍과의 협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시점에서 쑨원의 권위는 매우 낮아져서 장제스조차도 쑨원에게 짜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8월 9일, 천중밍이 영풍함의 장병들을 매수하여 쑨원을 죽이고 다른 함선을 매수하여 외국 조계지에 포격을 가해 열강의 간섭을 유도하고 쑨원의 함대를 백아담에서 쫓아낼 계획이라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같은날, 광저우로 진격하던 북벌군 역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에 쑨원은 각 함장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함장들은 전국이 위험하여 광동을 떠나 상하이로 갈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떠났다. 이에 쑨원은 각국 영사들에게 광동을 떠난다는 것을 통보하였고 미국 정부에 안전한 퇴각을 주선해달라고 했지만 미국은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며 거절했다. 하지만 영국 측에서 영국 해군 포함 HMS 마한함로 홍콩으로 쑨원과 장제스 부부를 이송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쑨원은 함대 장병들에게 1개월 분의 수당을 지급한 후 장제스 부부와 함께 오후 3시 45분 마한함에 탑승했다. 그날 밤 쑨원은 장제스와 함께 천중밍 토벌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쑨원:"나는 이제 여생이 10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자네는 아직도 50년은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주의를 위해서 분투하고 자중해주기 바라네." >장제스:"저도 이제 36세가 됩니다." >쑨원:"우리 당의 혁명은 이렇게 커다란 재난을 당하고 있네. 그런데도 우리는 목숨을 잃지는 않았어. 앞으로도 생명을 빼앗기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겠지. 그러나 자네가 선두에 서서 쉬지 않고 앞으로 50년을 분투해도 혁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랄 줄 아네." 홍콩에 도착한 쑨원 일행은 8월 10일 새벽, 소련의 호화 정기 여객선에 탑승하여 상하이로 출발했다. 8월 14일 오전, 쑨원은 상하이에 도착하여 군중의 환영을 받았다. 천중밍이 반란을 일으킨지 55일 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